尾生という男がある女と「橋の下で会おう」と約束した。尾生が先に到着した。女はまだ来ていない。橋の下の水が大きく増え始めた。「約束を守らなくてはならない」と考えて尾生は堪えた。女が現れる前、尾生は増えた水で命を失った。柱につかまりながらも守りぬいた約束という意の「抱柱信」という故事として「荘子」に出ている。
孟子に誰かが尋ねた。「兄嫁が水におぼれたとき、どうすればいいですか。手を握って救うことは男女の礼節に反しませんか」孟子の返事はこうだった。「礼節も良いが、兄嫁が水に落ちた状態では手を差し出して救わなければならない」今の時代からみればあまりにもおかしいことだが、当時には非常に真摯な問答だったようだ。
人との約束を守って(守信)、女性である兄嫁の手を取らないこと(男女不親)は儒家の原則だ。これを「経」と呼ぶ。機を織るのに必要な軸線の意味で始まったこの経という字は「崩さない原則」という概念で定着している。しかし原理と原則がすべての状況をすべて一緒にすることができない。
橋の下で水が増せばひとまず避けるのが正しい。兄嫁が水におぼれてもがいたとき、手を差し出して引き上げなかったら彼は獣であって人ではない。この場合は融通性を発揮しなければならない。文字で書くなら「権」だ。分銅を意味したこの字は、後に状況の軽重を選り分けて対処するという意味に落ち着いた。
原則を現実に適用する次元では状況による多くの問題が発生する。経という原則、現実の応用的側面である権が互いに調和を成すと人と社会が楽だ。儒家でかなり長い間、論議をしてきた概念だ。
世宗市に政府機能の一部を移転するにはまだ反対の声が多い。そんな点で世宗市の決定はまともに立てた原則ではない。それでも朴槿恵(パク・クンヘ)元ハンナラ党代表は「国民との約束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固執する。野党も同じだ。橋下の男、尾生の姿がありありと見える。
正しい原則でないなら崩してまた立てるべきだ。首都機能移転は国家の百年大計だ。100年後、大韓民国国民の生活を想定して原則(経)を立て、忠清道人の宿願を勘案し、現実の方途(権)を用意するのが順序だ。政府の方針を土台として原則と現実が調和を成す世宗市案が再び出ることを期待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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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尾生)이라는 남자가 한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미생이 먼저 도착했다. 여자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리 밑의 물이 크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약속을 지켜야지’라는 생각으로 미생은 버텼다. 여자가 나타나기 전 미생은 불어난 물에 목숨을 잃었다. 기둥을 붙잡으며 지켜낸 약속이라는 뜻의 ‘포주신(抱柱信)’이라는 고사로서 『장자(莊子)』에 나온다.
맹자에게 누군가 물었다.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을 잡아 구하는 것은 남녀의 예절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맹자의 대답은 이랬다. “예절도 좋지만 형수가 물에 빠진 상태에서는 손을 내밀어 구해야 한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 뻔하지만 당시에는 퍽 진지한 문답이었던 모양이다.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고(守信), 여성인 형수의 손을 잡지 않는 것(男女不親)은 유가(儒家)의 원칙이다. 이를 ‘경(經)’이라고 부른다. 베를 짜는 데 필요한 축선의 뜻에서 출발한 이 경이라는 글자는 ‘허물지 않는 원칙’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원리와 원칙이 모든 상황을 다 아우를 수 없다.
다리 밑에서 물이 불어나면 일단 피하는 게 옳다. 형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손을 내밀어 건지지 않는다면 그는 짐승이지 사람이 아니다. 이 경우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글자로 적자면 ‘권(權)’이다. 저울추를 의미했던 이 글자는 나중에 상황의 경중을 가려 대처한다는 뜻으로 진화했다.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차원에서는 상황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경이라는 원칙, 현실의 응용적 측면인 권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사람과 사회가 편안하다. 유가에서 꽤 오랫동안 논의를 해 온 개념이다.
세종시로 정부 기능 일부를 이전하는 데에는 아직 반대 목소리가 많다. 그런 점에서 세종시 결정은 제대로 세운 원칙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다리 밑의 남자, 미생의 모습이 역력하다.
옳은 원칙이 아니라면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한다. 수도 기능 이전은 국가 백년대계다. 100년 뒤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을 상정해 원칙(經)을 세우고, 충청도인의 숙원을 감안해 현실의 방도(權)를 마련하는 게 순서다. 정부 방침을 토대로 원칙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세종시안이 다시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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