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年7月9日、パキスタンの都市ラワルピンディを訪問中だったヘンリー・キッシンジャー米大統領安保補佐官が突然消えた。ヤヒヤー・ハーンパキスタン大統領との夕食会の日程も取り消しされた。急にお腹をこわして首都から80キロ離れた休養地で2日間療養するという公式発表が後であった。キッシンジャーがまたラワルピンディに現れたのは11日。彼は延ばしておいた日程を消化して、次の目的地であるパリに向かった。
誰も疑わなかったキッシンジャー潜伏の真相が明らかになったのはそれから5日後、リチャード・ニクソン大統領の特別声明発表があってからだった。キッシンジャーがパキスタンから秘密裏に北京に行って周恩来首相と会談したという内容だった。竹のカーテンを開いたニクソン-毛沢東会談は007諜報映画を彷彿させるキッシンジャーの密使外交が生みだした作品だった。
2000年3月、休暇で旅行に出かける男性が空港の出国審査台に立った。審査官が身分を調べると彼は特別に頼んだ。「個人的な休暇で行くのだから、上部に報告しないでください」。案の定、任務を終えて帰って来てみると、彼の机の上には「朴智元(パク・チウォン)文化部長官、某月某日、休暇で出国」という情報報告書類が上がってきていた。政界の情報報告とは回り回るもの、意図したとおり朴長官は本当に休暇で旅行に行ってきたとうわさが広がった。初の南北首脳会談を胎動させた朴長官の潜行もここまで緻密だった。
2001年9月、日本外務省のアジア・大洋洲局長に就任した田中均は週末になると海外に出国し、月曜の朝に何事もなかったかのように通常出勤する生活をおよそ1年間繰り返した。「週末行為」の実体が明らかになったのは翌年9月、小泉純一郎首相の平壌訪問計画が発表されてからだった。それまで朝日首脳会談開催を論議するために第三国で北朝鮮の密使に会った回数は30数回にのぼる。密使外交の保安維持をどうあるべきかを見せてくれる典型だ。その上に「ミスターX」と呼ばれた北朝鮮密使の身元はいまだベールに包まれている。
2009年10月、南北韓の密使が首脳会談を論議するために第三国で秘密裏に接触したという事実が初期段階で公開されてしまった。飛び交ううわさと情況にもかかわらず、首脳会談論議はないと否認ばかりしてきた政府の格好が笑い物となった。こんなしまりのない保安水準で南北首脳会談という大イベントをしようとした勇気が驚かれるばかり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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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9일 파키스탄 도시 라왈핀디를 방문 중이던 헨리 키신저 미 대통령안보보좌관이 갑자기 사라졌다. 야햐 칸 파키스탄 대통령과의 만찬 일정도 취소됐다. 갑작스레 배탈이 나 수도에서 80㎞ 떨어진 휴양지에서 이틀간 요양할 것이란 공식발표가 뒤따랐다. 키신저가 다시 라왈핀디에 나타난 것은 11일. 그는 미뤄둔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 행선지인 파리로 향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키신저 잠적의 진상이 밝혀진 건 그로부터 닷새 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특별성명 발표에 의해서였다. 키신저가 파키스탄에서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회담했다는 내용이었다. 죽의 장막을 열어젖힌 닉슨-마오쩌둥(毛澤東) 회담은 007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키신저의 밀사 외교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2000년 3월 휴가 여행을 떠나는 차림의 남성이 공항 출국심사대에 섰다. 심사관이 신분을 알아보자 그는 특별히 당부했다. “개인적으로 휴가 가는 것이니 상부에 보고는 하지 마세요.” 아니나 다를까,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의 책상 위에는 ‘박지원 문화부 장관, 모월 모일, 휴가차 출국’이란 정보보고 서류가 올라와 있었다. 관가의 정보보고란 돌고 도는 법, 의도한 대로 박 장관은 진짜 휴가를 다녀온 것으로 소문이 퍼졌다. 첫 남북 정상회담을 태동시킨 박 장관의 잠행도 이렇게 치밀했다.
2001년 9월 일본 외무성의 아시아·대양주 국장에 취임한 다나카 히토시는 주말마다 해외로 출국했다가 월요일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 출근하는 생활을 근 1년간 반복했다. ‘주말 행각’의 실체가 드러난 건 이듬해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 방문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였다. 그 사이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기 위해 제3국에서 북한 밀사를 만난 횟수는 30여 차례에 이른다. 밀사 외교의 보안 유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더구나 ‘미스터 X’라 불린 북한 밀사의 신원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2009년 10월 남북한의 밀사가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제3국에서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사실이 초기 단계에서 공개돼 버렸다. 무성한 소문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논의는 없다며 부인만 해오던 정부의 모양이 우습게 됐다. 이런 엉성한 보안 수준으로 남북 정상회담이란 대사를 도모한 용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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