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方の窓で人は黎明のおぼろげさを感じる。冷ややかな北の窓べでは世事で煩雑な心を沈め、甘い休息を取る。日差しが暖かい南向きの窓では人生のやすらぎを味わうことができる。日の暮れるころの西の方の窓べでは燦然とした夕焼けを眺め「消えゆくもの」の荘厳の美を味わう。
窓はだから重要だ。建物内に入っている人が複雑で入り乱れた世のすべてのものを置いて、生きる意味を振り返れる装置だ。窓があって考えは整えられ、時間に追われた生活はしばらく一息つくことができる。
東洋での窓は古くから学問修練の場という意味を持っていた。昔の寺小屋で学童たちが練習して書いた文などは「窓稿」または「窓課」と呼ばれていた。同じ師匠の下で一緒に文を読んだ人々は「窓友」だ。またこれらの友情を「窓誼」といった。
中国に伝わる有名な句節がある。「十年という厳しい勉強に力を注ぐ間には、訪ねてくる人すらなかったのが、科挙に合格すると世の中に知られるようになる(十年寒窓無人問、一挙成名天下知)」という言葉だ。何もない暮らしに厳しい勉強を続けた歳月を「冷たい窓」という意味の「寒窓」と書いている。
学問を研磨する場を窓と呼んだ理由を知りたい。これを説明する資料として納得できるものがない。推し量るに、世の中の煩雑さの中にも人が余裕とともに清い考えを維持できる窓の意を強調したものと解くことができる。東洋社会の勉強というのが単純な知識の蓄積というより人の出来を重視したという点を考えてみればなおのことそうだ。
同じ場所でともに学んだ人はそれで同窓と呼ばれる。中国の宋の代に初めてその用例が見えていたが、このごろの現代漢字用語を集中的に翻訳した日本によって使い道が多くなった。
大元(デウォン)外国語高校など一部の特殊目的高校の卒業生が法曹家の多数を占めているということで話題となっている。自然に彼らが新興パワー集団になって立ち上がる点に対する懸念もつきまとう。過去の一部名門高校の出身たちが見せた盲目的学縁中心の結束行動による懸念だ。
一緒に勉強したその窓の意味を振り返って過去の先輩たちが見せた醜態を拒否しなければこの時代の真のエリートにはなれない。新興名門出身たちが決して忘れてはいけない点だ。血縁・地縁に学縁までまた横行すれば、この社会の希望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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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의 창에서 사람은 여명(黎明)의 아스라함을 느낀다. 서늘한 북쪽의 창가에서는 세사(世事)로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햇볕 따사로운 남향의 창에서는 삶의 편안함을 맛볼 수 있다. 해 질 무렵의 서쪽 창가에서는 찬연한 노을을 바라보며 ‘사라지는 것’의 장엄미를 반추한다.
창(窓)은 이래서 중요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이 복잡다기한 세상만사를 뒤로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장치다. 창이 있어서 생각은 다듬어질 수 있고, 시간에 쫓기는 삶은 잠시 숨을 고른다.
동양에서의 창은 예부터 학문 수련의 장소라는 의미를 지녔다. 옛 서당에서 학동들이 연습 삼아 쓴 글들은 ‘창고(窓稿)’ 또는 ‘창과(窓課)’로 불렸다. 같은 스승 아래에서 함께 글을 읽은 사람들은 ‘창우(窓友)’다. 또 이들의 우정을 ‘창의(窓誼)’라고 했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십 년의 힘겨운 공부에 매달릴 동안에는 찾아주는 이 없다가, 과거에 급제하니 세상이 모두 알아준다(十年寒窓無人問, 一擧成名天下知)”는 말이다. 없는 살림에 어렵게 공부를 이어간 세월을 ‘차가운 창’이라는 뜻의 ‘한창(寒窓)’으로 적었다.
학문을 연마하는 장소를 창문으로 부른 이유가 궁금하다. 이를 설명하는 자료는 마땅한 게 없다. 미루어 보건대 세상의 번잡함 속에서도 사람이 여유와 함께 청정한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창문의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동양 사회의 공부라는 것이 단순한 지식의 축적보다 사람 됨됨이를 중시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같은 장소에서 배움을 함께한 사람은 그래서 동창(同窓)이라고 불린다. 중국 송(宋)대에 처음 그 용례가 보이다가 요즘의 현대 한자 용어를 집중적으로 번역한 일본에 의해 쓰임새가 많아졌다.
대원외고 등 일부 특수목적고 졸업생이 법조인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서 화제다. 자연스레 이들이 신흥 파워집단으로 올라서는 점에 대한 우려도 따른다. 과거 일부 명문고 출신들이 보인 맹목적 학연(學緣) 중심의 결속 행태에 따른 걱정이다.
함께 공부한 그곳 창문의 의미를 되새겨 과거의 선배들이 보인 추태를 거부해야 이 시대의 진정한 엘리트다. 신흥 명문 출신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혈연·지연에 학연까지 다시 난무한다면 이 사회의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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